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일본원정 (문단 편집) === 사와라 전투 & 하코자키 전투 === 음력 10월 20일 [[김방경]]이 지휘하는 연합군은 사와라(三郞浦, 현 [[후쿠오카현]] [[사와라구]])를 거쳐 내륙으로 진격하며 닥치는 대로 적군을 싹 쓸며 같은 연합군 지휘관인 훈둔조차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1차 원정에서 훈둔이 말하길, "비록 몽골의 병사들이 전투에 익숙하다고는 하나 어찌 고려의 병사들보다 더 낫겠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 연합군 주력 부대의 합세공격으로써 막부군이 만든 하카타 만의 해안 방위선 30km가 전부 붕괴되었다. 그래도 아카사카에선 제법 막부군이 선전을 했다. 전선 사령관 쇼니 가게스케는 시마즈 가문[* 훗날 [[임진왜란]]에서 노량 해전에 참전하며 전력 대부분을 잃지만 일본군 주요 지휘관들의 안전한 패주를 성공시킨다. 시마즈군이 개싸움을 벌여 조선 수군의 혼을 빼놓고 명에 뇌물을 준 덕이었다.]의 병사들과 함께 하카타에서 맹렬히 연합군에 항전했는데, 화살을 쏴 원나라 장수를 낙마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때 화살에 맞은 이는 원나라 좌우군부원수 유복형이었다.[* 호죠 토키무네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이것이 묘사되는데, 실제로 가게스케 본인이 직접 활을 쏘았지만, 드라마 상 묘사와는 달리 분전 중 추격해오는 유복형을 맞추었다고 한다. 또한 연합군에게서 노획한 활로 맞춘걸로 묘사되지만, 승마 상태에서 자신의 장궁으로 맞추었다.][* 유복형은 이때 죽지는 않았지만 부상이 심해서 상처를 치료한다고 먼저 배를 타고 원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고작 화살 한대에 아프다며 징징거리고 싸우지도 않고 되돌아가 버린 것을 보면 확실히 졸장이 맞다. 뒤에 벌어진 일들을 생각한다면 노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국 패배한 막부군은 다자이후의 서쪽 관문 미즈키 성(水城)[* 성 이름이 미즈키(水城) 즉 '물의 성'이라는 뜻이다. 과거 [[백제부흥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왜로 망명한 옛 백제 유민들이 다자이후를 비롯해 규슈 각지에 쌓았던 '조선식 산성' 가운데 하나인데, 원래 백제 유민들이 미즈키 성을 포함해서 그런 '조선식 산성'들을 쌓은 목적이 혹시 있을지 모를 당과 신라로부터의 일본 열도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상대가 바뀌었을 망정 원래 쌓았던 목적을 한 700년 쯤 지나서 달성할 뻔했다고나 할까...]에 모여 대비했다. 한편 연합군은 함대로 귀환해 차후 전투 계획을 논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